정령섬(Spirit Island)은 R. 에릭 로이스가 설계하고 Greater Than Games가 2017년 처음 출판한 1~4인용 협력 전략 게임이며, 한국어판은 보드엠 팩토리를 통해 2019년 출시되었다. 제이슨 벤키, 로이크 비요, 캣 G. 버멀린을 비롯한 여러 아티스트가 작업했다. 공식 플레이 시간은 대략 90~120분, 권장 연령은 14세 이상이며, 커뮤니티 평가로도 상당히 무거운 축에 속하는 게임이다. 플레이어가 자연 정령이 되어 침략자에게 맞선다는 주제를 비대칭 능력, 카드 운용, 영역 통제와 공동 퍼즐로 구현한 작품이다.
로이스의 대표작으로 꼽히며, 이후 실시간 협력 게임 포 사이언스! 등을 선보인 그의 설계 성향을 널리 알린 작품이기도 하다. 다른 게임에서 식민지를 건설하는 행동을 보며 그곳의 기존 주민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생각한 것이 초기 발상의 계기가 되었고, 일반적인 개척 게임의 시선을 뒤집어 침략당하는 땅과 주민의 관점에서 시스템을 구성했다. 2015년 킥스타터 캠페인을 거쳐 제작되었으며, 기존 작품의 리테마나 재구현이 아닌 독립적인 세계관과 시스템으로 출발했다.
무대는 유럽의 식민 팽창을 연상시키는 대체 역사 속 외딴 섬이다. 플레이어는 번개, 강, 대지, 바다처럼 서로 다른 자연 현상을 상징하는 정령을 맡아 섬의 주민인 다한과 함께 탐험가, 마을, 도시의 확산을 저지한다. 정령마다 성장 방식과 고유 능력, 원소 조합, 행동 속도가 달라 같은 상황도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해결한다. 침략자를 파괴하거나 밀어내는 것뿐 아니라 공포를 일으켜 그들의 승리 의지를 꺾는 과정이 게임의 핵심 목표이다.
각 라운드는 정령 단계, 빠른 능력 단계, 침략자 단계, 느린 능력 단계로 이어진다. 먼저 정령은 사용한 카드를 회수하거나 새로운 능력을 얻고 섬에 현신을 확장하는 성장 행동을 고른 뒤, 에너지를 지불해 이번 라운드에 사용할 능력 카드를 동시에 선택한다. 빠른 능력은 침략자가 행동하기 전에 해결되므로 당장의 재난을 막는 데 유용하고, 느린 능력은 침략자 행동 뒤에 발동해 다음 라운드를 준비하거나 이미 벌어진 상황을 수습한다. 카드의 원소 기호를 알맞게 조합하면 정령판의 타고난 능력이 활성화되어 손패 이상의 효과를 만들 수 있다.
침략자는 자동화된 카드 체계에 따라 특정 지형을 탐험하고, 이전에 탐험한 지역에 건물을 세우며, 그보다 앞서 개발한 지역을 황폐화한다. 이 순서가 보드에 공개되어 있어 앞으로 위험해질 땅을 예측할 수 있지만, 모든 지역을 동시에 구할 수는 없으므로 피해를 감수할 장소와 선제적으로 정리할 장소를 정해야 한다. 황폐화가 누적되거나 정령의 현신이 모두 사라지고, 침략자 카드가 소진될 때까지 승리하지 못하면 패배한다. 반대로 공포를 충분히 쌓으면 위협 단계가 올라가 제거해야 할 침략자의 범위가 줄어들어, 후반에는 완전한 섬멸 대신 침략 의지를 무너뜨리는 승리가 가능해진다.
공개 정보가 많은 완전 협력 게임이어서 직접적인 경쟁은 없지만, 능력의 사거리와 대상, 빠른 행동과 느린 행동의 순서를 맞추기 위한 의사소통이 중요하다. 침략 지형과 능력 카드, 공포 효과의 등장 순서에는 무작위성이 있으나 침략자의 탐험·건설·황폐화 주기가 미리 드러나고 새 능력도 여러 장 가운데 선택하므로 계획으로 위험을 완화할 여지가 크다. 초반의 현신 배치와 성장 경로는 후반의 에너지 수입, 카드 사용량과 활동 범위를 결정한다. 모든 정보가 공개된 만큼 숙련자 한 명이 결정을 주도하는 현상이 생길 수 있지만, 정령별 손패와 성장 계획이 복잡해 각자 자신의 영역을 맡으면 역할 분담이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공식 지원 인원은 1~4명이며, 커뮤니티에서는 정령 간 연계와 진행 시간을 함께 고려해 2인을 특히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1인 게임은 별도의 오토마 없이 섬 보드 하나와 정령 하나를 사용해 다인 게임과 거의 같은 절차로 진행하며, 원한다면 한 사람이 여러 정령을 맡을 수도 있지만 관리 부담이 크게 늘어난다. 3~4인에서는 섬이 넓어지고 조합 가능한 능력이 많아지는 대신 협의와 상황 파악에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모듈식 섬 배치, 여덟 정령의 비대칭 능력, 단계별 적대국과 시나리오가 조합되므로 기본판만으로도 반복 플레이의 변화가 충분하다.
규칙의 큰 흐름은 일정하지만 사거리, 대상 조건, 밀기와 모으기, 피해와 방어, 다한의 반격, 원소 발동을 함께 처리해야 해 첫 학습 난도가 높다. 초심자용 저복잡도 정령과 정해진 순서대로 능력 카드를 얻는 진행 카드가 마련되어 있으나, 전략 게임에 익숙하지 않은 모임의 첫 작품으로는 부담스러울 수 있다. 구성물은 모듈식 섬 보드, 침략자 보드, 정령판과 능력 카드, 탐험가·마을·도시 말, 다한과 오염 토큰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카드와 정령판의 효과 문장이 중요해 언어 의존도가 높은 편이며, 한국어판은 카드와 규칙서를 한국어로 제공한다.
주요 확장으로는 사건과 야수·질병 등의 토큰을 추가하는 가지와 발톱, 정령과 적대국 및 시스템을 대폭 확장하는 험난한 대지, 초기 프로모 정령을 묶은 깃털과 화염, 현신 개념을 발전시킨 자연의 화신이 있다. 기본판만으로도 완결된 게임이며 확장은 익숙해진 뒤 단계적으로 도입하는 편이 학습에 유리하다. 정령섬은 골든 긱의 협력·전략·솔로·혁신 등 여러 부문 후보와 2019년 아스 도르 전문가상 후보에 올랐고, 독일 게임상 투표에서도 상위권에 들었다. 강한 비대칭성과 장기적인 성장 퍼즐, 테마와 자동화된 적 행동의 결합을 선호하는 모임에 잘 맞지만, 긴 설명과 높은 계산량을 감수해야 하는 작품이다.
